<현장취재>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류재복 기자 | 기사입력 2015/04/07 [22:11]

<현장취재>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류재복 기자 | 입력 : 2015/04/07 [22:11]

▲     © 류재복

         <현장취재>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8명의 장인들이 옹기의 전통을 잇는 외고산 옹기마을
               허덕수-허덕만 형제가 1958년 외고산에 정착, 터 일궈
 
[류재복 대기자]
옹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질그릇과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을 총칭하며 삼국시대부터 사용해온 우리민족 고유의 음식 저장용기로써 김치와 장류, 주류등의 발효식품을 저장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귀중한 용품으로 이런 옹기가 우리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옹기만이 갖는 특성 때문이다.
 
옹기에도 통기성이 좋아 숨을 쉬는 그릇의 옹기, 방부성이 좋아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그릇의 옹기, 환원성이 좋아 흙으로 돌아가는 그릇의 옹기 등이 있는데 이런 옹기들이 집단으로 생산되고 또 거래가 되는 옹기마을이 있다. 그곳이 바로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로 이곳 옹기마을이 번성하게 된 이유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주변의 많은 수요와 편리한 교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5일, 부천 소신교회 허병주 목사의 안내로 처음 찾아간 외고산 옹기마을은 지리적으로 멸치가 많이 생산되는 부산 기장과 울산항, 부산 등이 인접해 있어 옹기수요가 많았다. 또한 국도 14호선과 31호선, 철도 동해남부선 등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현재의 옹기마을이 형성되고 번성하게 된 것은 바로 허병주 목사의 부친과 숙부가 되는 영덕출신 허덕수-허덕만 형제 匠人의 영향이 컸다. 동생인 허덕만 장인은 원래가 기독교 신자로 어느 날 꿈속에서 옹기마을을 지정해주는 게시를 받고 그 땅을 찾아가니 바로 꿈속에서의 땅과 똑같아 정착을 했는데 이곳이 외고산 이였다.
 
옹기 제작에는 옹기 흙이 많이 출토되어야 하는데 마치 석유를 발견한것처럼 양질의 다량 옹기 흙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꿈속의 게시는 금맥을 발견한것과 같았다. 동생인 허덕만이 꿈속의 게시대로 외고산 마을에 정착하려하자 형 허덕수 장인은 옹기마을의 건립을 위한 거액의 자금을 댔고 옹기제작기술, 칸가마 제작 기술등을 협력하였고 자신의 전국 각 지역의 옹기분점을 이용하여 판매에도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이에 힘입어 허덕만 옹기장인은 외고산 옹기마을을 발전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막대한 富를 거머쥐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허덕수 장인은 1958년 소사제1신앙촌 건설에도 역시 거대한 자금을 댄 장본인이다.
 
1958년, 형 허덕수의 자금과 기술 등 도움을 받아 외고산에 정착해 옹기를 만들기 시작한 허덕만 장인은 이때부터 전국 타지에서 옹기를 굽다가 외고산 마을로 이주해 온 소위 옹기쟁이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해  일약 옹기마을로 전국적인 유명을 날렸다. 특히 1970년대에 180세대가 옹기제작에 종사할 정도로 옹기마을이 번성하게 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他地에 비해 옹기제작에 천혜의 장소인 외고산
             흙, 기후가 좋고 거리가 가까운 부산항이 있어 발전
 
첫째는 외고산의 흙이 타 지역의 흙보다 좋아서 옹기를 만드는 흙이 좋고 풍부했고 옹기를 굽는 가마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둘째는 이곳의 기후가 따듯하여 겨울에도 일정하게 옹기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셋째는 외고산이 생산한 옹기를 판매할 수 있는 배후도시로 부산이 있고 또 부산과 가까운 길목이라는 위치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언 6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현재의 옹기마을! 이곳에는 울산광역시에서 외고산 옹기마을의 관광자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에 8명의 옹기장인들을 '옹기장' 이라는 칭호로 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을 했다. 이들 8명의 옹기장인들은 배영화, 신일성, 조희만, 진삼용, 서종태, 장성우, 최영삼, 허진규 등인데 장성우 장인은 가야신라토기의 대표로서 ‘과거와 현대가 함께 발맞춰 가는곳’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열심히 옹기를 만들고 있다.
 
가야신라토기는 신석기 이후의 가야, 신라, 백제, 고구려, 통일신라까지의 기마인물상 등 다양한 종류의 옛 토기를 재현하고 있으며 이 신라토기 또한 허덕수 장인이 최초 제작기술을 전수한 것이다. 다기세트, 촛대, 화분, 주전자 등의 현대적 생활 토기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주 제품에는 항아리, 푸레 작은항아리, 푸레정수기, 푸레주병, 푸레초병이 있다.
 
서종태 장인은 경남요업의 대표로서 한국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재래식 옹기를 3대째 이어오는 장인인데 그는 현대식 가스가마가 아닌 나무를 태워 굽는 전통 황토가마를 사용하여 무공해 장단지, 콩나물시루, 쌀 단지, 생수 단지, 화분 등 다양한 생활옹기를 제작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주 제품에는 사각항아리, 커피잔 세트, 옹기 미니어처, 양념기, 약초항아리 등이 있다.
 
진삼용 장인은 금천토기 대표로서 3대째 가업을 이어 옹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현대생활에 접목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주 제품은 접시, 화기, 항아리, 쌀독, 냉장고단지 등이 있으며 조희만 장인은 성창요업 대표로서 살아 숨 쉬는 옹기를 만드는데 그는 옹기의 절박한 멋에 매료되어 오직 좋은 옹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흙과 더불어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재주와 기술을 개발하고 숨 쉬는 옹기를 생산하다보니 어언 40년이 되었다"면서 "내가 만드는 주 제품은 석초병, 막걸리병, 양념단지, 밥공기세트, 머그잔세트, 양념기 등" 이라고 말했다. 최영삼 장인은 영남요업의 대포로서 전통 옹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는 1971년 창업 이래 현재까지 전통옹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문 생산업체로 1978년 영남요업이란 상호를 걸고 새롭게 출발했다.
 

               이조백자 전수자인 허상민 장인의 뿌리와 전통을 이어오는곳
                   8명의 무형문화재 중 배영화 옹기장이 최고의 장인
 
그 후 1994년에는 농어촌 특산단지로 선정이 되고 옹기제품을 외국에까지 수출하는 등 옹기의 보급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으며 주 제품은 사구, 항아리로 대, 중, 소가 있으며 신일성 장인은 일성토기 대표로 그는 옹기를 만드는데 있어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온 흙과 불의 인생이다. 그는 선친의 뒤를 이어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오직 장인정신으로 전통 옹기의 멋을 살리는데 심혈을 기울여온 장인이다. 그가 만든 주 제품은 항아리, 수반, 자배기, 머그잔세트, 양념기 세트가 있다.
 
배영화 장인은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요업 대표로 이곳 외고산 옹기마을 최고참 장인이자 연령도 74세로 제일 어른이다. 그는 흙과 함께 50년이 넘은 인생으로 독짓는 늙은이의 삶과 함께 숨 쉬는 옹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1959년 외고산 옹기마을 설립자인 허덕만 장인의 권유로 18세때 옹기제작에 입문하여 이곳 외고산 마을 개척에도 많은 노력과 공로가 많은 장인이다. 특히 배영화 장인은 허덕수-허덕만 설립자 집안의 3대가 이어온 성형기법, 물레질, 유약제조, 가마짓기, 가마불 등 기술을 전수받아 1969년 영화요업이란 상호로 독립하여 옹기를 생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가 만드는 주 제품에는 항아리, 포도주단지, 물 항아리, 쌀 단지, 주안상세트가 있으며 특히 그가 만드는 제품은 세계 각지로 나가고 있고 기독교의 성지인 에루살렘 박물관에는 그가 만든 가마와 옹기작품이 전시돼있다. 외고산 옹기마을의 막내 장인이 되는 허진규 장인은 옹기골도예 대표로 그는 ‘전통 옹기속에 숨겨진 한국의 미를 재발견 한다’는 슬로건을 갖고 우리 조상들의 혼이 깃든 옹기를 재현하고 발굴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작품화 하고 있으며 잊혀져가는 전통예술 옹기에 더욱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고집있는 옹기쟁이 삶을 살고 있다.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가장 젊은 옹기장인 허진규 장인은 "우리 외고산 옹기마을의 뿌리가 없어 마을의 정체성과 그 뿌리를 찾기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면서 "내가 만드는 주 제품은 어항, 암각화 자라화병, 다기세트, 암각화 주병세트, 암각화 화병 등"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8명의 옹기장들이 한국의 전통옹기를 제작, 보급을 하기위해 노력하자 이곳 지역에 '울산옹기박물관'과 '옹기아카데미관'이 있는데 이는 옹기마을의 상징으로서 상설전시와 기획전 등을 통해 옹기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10년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에 앞서 2009년 11월 옹기문화의 전통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옹기마을박물관 윤종수 관장(71세)이 많은 노력을 했다.
 
              옹기박물관에는 세계최대의 기네스북에 오른 옹기 있어
                   오는 5. 2~5. 4 ‘2015옹기축제’ 준비에 한창
 
윤종수 관장은 “이곳 옹기박물관은 우리 조상들의 얼과 혼이 깃든 산 교육장이기에 어린 학생들에게 체험을 하도록 항상 개방을 하고 있다”면서 12명의 직원들과 함께 무보수로 봉사를 하고 있는 전직 교육자 출신으로 전 울산광역시 교육위원회의장, 울산 성신고, 제일고의 재단 이사를 지냈고 한국 우주소년단 울산본부장을 거쳐 울산 옹기축제 추진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곳 마을에도 손기술로 만든 옹기, 가다를 만들어 기계로 찍어내는 옹기, 중국에서 수입해온 옹기 등 세 분류의 옹기들이 있어 다소 값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옹기마을 박물관에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최대의 대형옹기가 있는데 이 거대 옹기는 전통옹기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옹기산업의 부흥과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기획으로 건조와 소성과정에서 다섯 번의 실패 끝에 옹기마을 장인들의 끈기와 도전으로 마침내 5전6기로 성공, 기네스인정 세계 최대의 옹기를 탄생시켰다.
 
윤종수 관장은 오는 5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2015울산옹기축제'에 대하여 "2000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 생산지인 우리 외고산 마을에서 개최되는 축제로 전통과 웰빙의 멋을 함께 느끼는 품격있는 옹기축제"라면서 "옹기축제는 옹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동시에 관광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옹기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또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흙을 직접 만져보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옹기문화를 이해하고 추억을 만들어 가는 체험의 축제로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을 환영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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