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 S촌, 새해 맞아 男 ‘전도관’ 불 타

류재복 기자 | 기사입력 2015/01/27 [11:55]

소사 S촌, 새해 맞아 男 ‘전도관’ 불 타

류재복 기자 | 입력 : 2015/01/27 [11:55]


▲     © 류재복

         소사 S촌, 새해 맞아 男 ‘전도관’ 불 타
            경주 토함산에 묻힌 3천여 원혼이 붕괴의 불길 붙인 듯

                   失火 및 放火에 대하여 소방 당국에서는 함구

[류재복 대기자]

2015년 새해를 맞아 C종교집단에 불길한 징조가 감돌고 있다. 이 종교집단이 최초 태동한 부천 소사의 S고등학교 옆에 자리 잡고 있었던 남자교회(전도관)에서 최근에 화재가 발생하여 내부가 모두 불타 버렸다. 그 불탄 현장의 가까운 곳에는 소위 오만제단으로 불리는 C종교집단 소사S교회(전도관)가 있고 이곳에는 최 모 여자가 관장으로 있다.

아직도 이곳에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간장, 두부, 또는 이곳 집단에서 만든 물품들을 사러왔다고 하면 출입을 허락한다고 한다. 무슨 수용소 같은 분위기로 일반인들에게 많은 의혹을 주고 있는 이곳, 그런데 이곳의 통제를 받고 있는 한 곳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실화인지 방화인지 소방 당국에서도 화재이유에 대하여는 함구를 하고 있다.

1980년 1월, 1일, 박 모 씨가 “내가 하나님이다”라며 자신을 우상화하기 위해 C종교집단을 만든 그는 본래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의 장로로 1955년 초창기에는 정통기독교 정신에 의거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약칭 전도관)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신도가 늘고 재산이 늘고 배가 부르자 온갖 탐욕을 위해 CB교로 개칭하였다.

그후 CB교는 기독교와 별개의 종교임을 표방하며 교회당의 종탑에도 십자가가 아닌 비둘기 형상을 세웠다. S촌은 이곳 종교집단의 모체다. 이곳에는 CB교 신도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마을이 있었다. 1957년부터 창시자 박 모의 주도로 경기도 부천시, 경기도 남양주시,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차례로 건설되었으며, 2000년 이후 제1, 제2 S촌이 재개발되면서 현재는 부산 기장에만 남아있다.

이들 S촌의 역사를 보면 소사S촌은 제1의 마을로 1957년11월 1일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범박리(현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일대에 착공된 최초의 마을이다. 약 1만여 명이 입주하였으며, 마을 안에 각종 생활용품 및 악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마을 내의 주요 시설들이 노후 되면서 2000년부터 재개발되어 현재는 범박동 현대 홈타운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현장 내부는 강대가 불타고 불에 탄 서적들도 뒹굴어

                    十字架 대신 세운 비둘기 형상도 사라져

덕소S촌은 제2 마을로 1962년 7월 21일,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일대에 착공되었다. 소사에 있던 생산 공장들을 이전하고, 약 6천여 명이 입주하였다. 이곳에서는 소사에서 생산하던 품목 외에 철강 등 중공업 분야 공장까지 건설되었다. 2001년 재개발되어 현재 덕소 두산 위브아파트가 들어섰다.

기장S촌은 제3 집단마을로 1970년 2월 28일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일대에 세워졌다. 50여 개의 생산 공장을 세우고 약 5천여 명이 입주하였다. 1971년 12월 29일 이 지역 일대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추가 시설 확장은 중단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 소사 및 덕소가 재개발되어 현재는 CB교의 본부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S촌이다.

이들의 기업 활동을 보면 1957년 부천에 S촌이 처음 건설되면서부터 기업과 생산 공장이 세워졌고, 이런 기업은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S그룹이라는 기업집단으로 발전하였고 계열사인 S합섬은 제9회 수출의 날(1972년 11월 30일)과 제10회 수출의 날(1973년 11월 30일)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관심을 받아 각각 석탑 및 철탑 산업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신앙촌에 어둠의 그림자가 스며든 것은 1980년 박 모 교주가 예수교에서 CB교로 바뀌면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부르게 하고 수많은 여신도들을 소위 구원을 받게 해준다는 구실로 섹스안찰의 폭행을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는 이단행위를 하다가 10년 후인 1990년 2월 7일, 의문의 독살을 당하고 그 자리를 셋째아들이 차지하고 그 아들 역시 2대교주로 자칭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패륜을 저지르다 그도 15년 후인 2005년 어느 날, 행방불명이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단의 역사를 갖고 있는 C종교집단이 최초 태동한 발상지에서 그들 소유의 건물에서 새해 벽두에 불이 났음은 분명 이들 집단이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징조이다. 모든 화재의 현장에 불이 난 후에는 시커먼 잿더미만 남듯이 C종교집단에도 그런 현상이 곧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아마도 지난해 발견된 경주 토함산에 암매장으로 묻힌 3천여 원혼들이 귀신의 힘으로 너무도 억울한 한을 풀지 못해 C종교집단 최초의 마을 이었던 소사에 붕괴의 불길을 붙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현장의 화재현장을 살펴보니 내부는 모두가 불탔고 주변에는 신앙체험기 등 불 에 타 버린 서적들이 뒹굴고 있었고 밖 건물에는 깨진 유리창의 모습과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전도관 모습이 보였고 십자가 대신 결었던 비둘기 표시물도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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